'구로다 바주카포'의 세가지 약속…지켜진 건 하나뿐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4-30 08:32   수정 2023-04-30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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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금융완화 10년, 日경제 어떻게 변했나(上)
에서는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규모를 두 배 늘려 2년 내 물가를 2%로 끌어올리겠다"는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의 호언장담이 임기 10년 동안 어떻게 진행됐는지 살펴봤다. 그의 '2·2·2 공약' 가운데 지켜진 건 통화공급량과 국채 매입규모를 두 배 늘린다는 것 뿐이었다.



구로다 총재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는 '구로다 바주카포'라는 화끈한 이름이 붙었지만 실물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도 지지부진했다. 2022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46조엔으로 2012년보다 5% 늘어나는데 그쳤다.



민간 기업의 설비투자는 16% 증가했지만 일본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는 2% 감소했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 임금이 2012년보다 5% 감소한 탓이었다.



일본의 연구개발비, 즉 미래에 대한 투자 규모는 17조6000억엔으로 미국(71조7000억엔), 중국(59조엔)에 이어 3위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중국과 한국의 연구개발비가 14.2배, 4.6배 늘어나는 동안 일본은 30% 늘어나는데 그쳤다.

돈을 살포하는 양적완화로도 효과가 없자 일본은행은 2016년 1월 기준금리를 -0.1%로 낮추는 초유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대출을 못하고 남은 돈을 일본은행에 맡기면 이자 대신 페널티를 물릴테니 돈을 더 많이 빌려주라고 은행에 으름장을 놓은 것이었다.



마이너스 금리를 결정한 이후 일본 시중은행의 대출 잔고는 460조엔에서 560조엔으로 6년간 100조엔 증가했다. 하지만 늘어난 100조엔 가운데 4분의 1에 달하는 26조엔은 부동산 대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도쿄 도심 아파트 가격이 버블(거품) 경제 이전 수준을 넘어 사상 최고치로 오른 배경이다.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제조업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은 8조엔에 그쳤다. 그런데도 구로다 총재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대규모 금융완화를 하지 않았다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은 더욱 떨어졌을 것"이라며 "정책운영은 타당했고,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성공적이었다"라고 자평했다.

근거는 고용이다. 구로다 총재를 발탁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2020년 8월 사임하면서 "8년여 재임기간 동안 400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한 점"을 최대 치적으로 꼽았다.



아베 전 총리와 구로다 총재의 자평대로 일본의 고용지표는 수치상으로 대규모 금융완화를 거치면서 확연히 좋아졌다. 2012년 4.3%였던 실업률은 2022년 2.6%로 떨어졌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한 명당 몇 개의 일자리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도 0.83배에서 1.35배로 상승했다.



하지만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총무성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2012년 1816만명이었던 파트타임과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고용자는 2022년 2101만명으로 285만명 증가했다. 정규직은 3345만명에서 3588만명으로 243만명 늘었다.

지난해만 놓고보면 비정규직이 26만명 증가하는 동안 정규직은 1만명 늘었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의 37%에 달한다. 특히 파트타임 근로자의 비중은 25.8%(2020년)로 25년 만에 11.6%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은 1.9%포인트 낮아졌다. 일본 기업들이 일손을 확보하면서도 인건비는 낮추려 비정규직 여성과 고령자를 늘린 결과다.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1997년에 비해 977만명 늘었다.

늘어난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341만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이고 619만명이 여성이었다. 일본이 '30년째 월급이 늘지 않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는 것도 급여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시라카와 히로미치 크레디트스위스재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일본이 지난 30년 동안 배운 것은 성장에 대한 기대(인플레이션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않는 한 재정확장과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물가가 영원히 오르지 않고, 정부만 비대해진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국채 매입, 마이너스 금리 정책 도입, 장단기 금리조작 정책 도입 등등. 시라카와 수석의 말대로 지난 10년간 일본은행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인 대책의 연속이었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을 대상으로 세계 중앙은행 역사에 보기 드문 실험이 10년이나 이어진 셈이다.

구로다 총재의 말대로 강력한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았다면 일본 경제는 더욱 침체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험이 10년째 계속되면서 일본 경제의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졌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인다.



2013년 0.9%였던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0.3%까지 떨어졌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인구감소와 현재 추세대로 진행되면 2040년께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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